-간 만에 잡은 타자 판이 빛을 내고 있다.-
나는 군인이다. 아무도 안 믿는다. 왤까?
하도 날탕이라서. 휴가 나갈 때도 군복 없이 나가는 군인.
그래도 군인이다. 벌써 1년도 넘게 생활했다.
막상 이곳에 있다 보면,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면서도 세상살이 걱정거리는 하나도 관심 없이 산다.
하루하루 아무 탈 없이 먹고 자는 것만 해도 감사, 또 감사.
길거리에 나붙은 ´오늘도 무사히´라는 포스터 글귀를 선무당이 웃돈 받고 써준 주문 마냥 외우고 다닌다.
내 인생은 참 실수투성이다. 지금에 와서 아, 그땐 왜 그런 일을 했지, 하고 후회하고 또 고민하고, 그러니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지.
지금도 젤 후회되는 것 중에 톱을 뽑으라면 아마도 여기 들어 온 거겠지.
내 나이 꽃다운 20살에 이곳에 와서, 남들은 시원한 맥주로 목 축이던 여름에 나는 시큼 텁텁한 맛 스타로 갈증을 해결했고, 밖에선 장충동 왕족발로 새벽의 허기진 배를 채울 때 나는 정가 750원짜리 컵라면을 2시간 동안 구르고 눈물을 훔치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. 아, 생각만 해도. 쿠얼.
아무튼 그 외에도 많다.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4년제 대학을 콧바람으로 날리고 죽어도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겠다고 전문대 문예창작과로 진학했다. 그것도 내년이면 없어진다. 오호통재라. 인생 완전히 꼬였다.
싫다는 여자 1년 넘게 꼬셔서 간신히 옆에 꿰차고는 군대 핑계 대고 헤어졌다. 그러고선 속이 쓰려서 또 훌쩍.
그래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. 사지 멀쩡하고 아버지가 금 배지에 삼촌이 대기업 사장 아닌 이상 다 군대 가야 한다. 그런 군대 일찍 와서 벌써 밑에 수두룩하게 있다. 학교는 제대해서 더 좋은 학교 가라고 하늘이 알아서 퇴학시켜 줬다. 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.
여자친군 세상의 경험이지, 여러 사람 만나서 인생 경험도 쌓고, 좋은 글거리도 생기잖아,
솔직히 지금 눈 뜨고 보는 현실이 아플 수 있다. 속옷 바람에 초겨울 칼바람을 맞고 있는 현실을 살고 있더라도 내일이 되면 감기 걸리지 말라고 극기 훈련한 셈이지 뭐.
현실이 행복한 건 과거가 되었을 때다.
멋있고 보람찬 과거를 만들기 위해 현실을 살며 웃자. 히죽./옮긴 글-